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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봉
[서평] 거의 모든 것의 역사


- 빌 브라이슨




이 책은 한권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담았다고 말하기엔 조금 건방진 500여페이지에 불과한 한권짜리 책이다.

일반 단행본에 비하면 조금 두껍긴하다.

얼핏 책을 들추면 빼곡하게 들어선 글자들이 머리속에서 춤을 추듯 휘청거린다.

차례를 보면 좀더 거리감이 생길 것이다.

우주, 지구, 행성, 생명...



역사라는 단어가 주는 착각과는 달리 이 책은 과학 교양서이다.

그리고 보물과도 같다.

책 자체에서 오는 위압감과는 달리 의외로 쉽고, 재미있고, 에너지가 넘친다.



책을 지은 빌 브라이슨은 여행작가로 유명하다.

과학자가 아닌 여행작가가 쓴 과학 교양서라니, 그에게 있어 낯선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과 과학에 대한 호기심은 크게 동떨어진게 아닌가보다.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과학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인 빌 브라이슨이 문득 생긴 호기심... 이를테면 우주의 기원이라든지, 원자의 사생활(?)과 같은 데 미치게 된 과학적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여행작가의 특기를 발휘하여 온 세계를 누비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면서 3년을 보낸 결과물이 이 책이다.

그러니 이 책의 시작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좀더 저자가 대단한 점은 우리에겐 낯선 과학용어를 익숙하게 쓰고 있다는 것 정도?



빌 브라이슨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쓴 방법은 우리 인간의 과학사를 훑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게 알고 있는 지식들은 모두 옛 과학자들이 피땀어린 노력으로 알아낸 것들이다.

살아있을 때 업적을 칭송받는 경우도 물론 있었지만,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교회로부터 파문 당하기도 했다.

때로는 집도 가족도 잃고 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역경도 감내하면서 그들이 추구하고자했던 것은 '만물에 대한 진리'였다.



그렇게 얻어낸 과학적 사실들은 우리 인간의 과학사를 빼곡하게 채웠다.

빌 브라이슨은 이런 과학사를 소개함으로써 우리 주위에 너무 당연하게 있지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들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해준다.



잠재적 책구매자를 위해 몇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본다.

1683년 핼리혜성을 발견한(사실은 혜성의 주기를 알아낸것 뿐인) 영국의 에드먼드 헬리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의 일그러진 궤도를 도는 이유를 뉴턴에게 물어보았고,

뉴턴은 그즉시 답을 안다고 했지만, 2년 후에야 '프린키피아'라는 위대한 걸작을 통해 증명해냈다. 그 답은 바로 중력이었다.

1750년대 스웨덴의 화학자 카를 셸레는 염소, 망간, 질소, 산소 등 8가지 원소를 처음 발견했는데, 그가 실험하는 모든 물질을 맛보아야하는 고약한 습관 때문에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1730년대 초 카를 폰 린네라는 스웨덴의 식물학자는 식물과 동물을 분류하는 체계를 세웠는데, 그는 그 자신을 너무나 위대하게 생각해서 자신의 묘비에 '식물학의 왕자'라고 새겨줄 것을 요청했다.

1821년 스코틀랜드 한 대학의 청소부였던 제임스 크롤은 어떤 정규교육도 받지않고 독학으로 지구 빙하기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그 천재성을 인정받아 나중에는 런던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일반 독자들이 너무 어려워하지 않게 이런 식의 에피소드들을 소개해주며 전문지식을 알려주는 빌 브라이슨의 글솜씨가 탁월하다.

또한 책 전반에 재미있는 비유들이 넘쳐나는데, 태양계 그림에서 지구를 팥알정도로 나타낸다면 목성은 300미터 떨어져있어야하고, 명왕성은 2.4킬로미터가 떨어져있어야한단다.

바다의 평균깊이인 4킬로미터에서의 압력은 짐을 잔뜩 실은 레미콘 14대로 짓누르는것과 같단다.

이런 비유들은 과학적 사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책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괜찮은 책이다.

우주에서 지구, 그 위에 살고있고 살아왔던 생물들, 그리고 인간을 모조리 훑어내리면서도 이렇게 쉽고 재미있을 수 있을까?

더 중요한 것은 책 자체가 어떤 깨달음을 준다는 사실이다.

빅뱅이래 지구가 생성되고, 그 위를 수놓았던 화려한 생명들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정말이지 아주 잠깐 지구에 머무르고 있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라는 것.

지구는 인간의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것이라는 것.

다들 알고는 있지만 절감하지는 못하는 사실.



3억년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삼엽충에 비하면 인간이 지구에서 보낸 세월은 0.5%에 불과하다.

이런 발톱의 때만한 존재들이 가당치도 않은 본능 때문에 다른 종들을 사냥하고, 멸종시키고 - 책에서 나열된 예를 보면 다른 종을 멸종시키는 건 인간의 본능이 맞는것 같다 -

생활을 좀더 편리하게 한답시고 발명한 것들로(유연휘발유, CFC 그리고 다른 수많은 예들) 삽시간에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있으니 과연 우리가 이럴 자격이 있는 것인가.



이런 책은 내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이 책에 대한 접근성을 방해하는 몇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활자가 너무 작다. 그 작은 활자로 입자물리학이니, 분류체계법이니, 허블상수니를 논하고 있으니, 과학교양서로선 정말 쉽게 쓰여졌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정독을 하고 있지않으면 책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둘째, 과학교양서라는 그 자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책을 관심이 있지않는 한 들쳐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과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얼마나 딱딱하고 재미없는가.

그런데 사실은 과학자체가 재미없는게 아니고, 우리가 배워온 과학이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셋째, 책이 두껍다. 과학교양서라는 것도 모자라 두껍기까지 하다. 시작부터 기가 질려 페이지가 쉽게 안 넘어갈지 모른다.




이 책은 교양서이지 필독서가 아니다. 과학에 대한 교양을 쌓고 싶으면 읽으면 되고, 아니다싶으면 안 읽으면 된다.

하지면 위 세가지의 어려움을 떨치고 한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내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그러나 또 얼마나 기적같은 존재인지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푸른 지구가 .. 내가 그냥 밟고 서있는 땅덩이로서가 아니라 곁에서 살아숨쉬는 하나의 생명체로 다가올 것이다.

굳이 안 읽어도 되지만, 읽는다면 시간과 노력이 절대 아깝지 않을 명저를 관심없다는 이유로 밀어내기에는 너무 아쉽지않은가.





** 이 책은 두가지 버전이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본 책에 감동을 무진장 받은 나머지 태리 중학생되면(더 빠르면 좋고) 읽혀야지하고 '그림으로 보는..'을 덜컥 사서 읽어봤는데

책 자체로의 재미로 따지면 그냥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더 낫다.

'그림으로 보는..'은 시각적으로 이해하기는 더 쉽지만 책 자체가 축약본(p.170)이니 재미가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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